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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4 아주 사적인 시간 (私的生活)

아주 사적인 시간 (私的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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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시간 (私的生活)
다나베 세이코(田邊聖子) 저 / 김경인 역

조제 이후 만나는 그녀.
조제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녀의 두번째 책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담담하게 써내려진 노리코의 이야기는 그냥 일상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뒤의 개운함 보다는 짭짜름한 소금내가 물씬 풍기는 듯도 하다.
어떠하다 라는 단정적인 말투로 맺음을 하기에도 무언가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76년에 쓰여진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세련된 표현들이 과거에 그것도 7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멋스러웠다.
이 소설로 인해 다나베 세이코라는 작가가 더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노리코.
그녀에게 있어 결혼생활은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멀다.
그를 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와의 삶은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사치라고 부른다.
그와의 삶 안에서 나의 삶은 철저히 격리가 되어 있다.
친구들은 이 집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모른다.
그의 모임에는 나가지만 나의 모임에는 나가지 않은지 오래다.
그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서의 나를 보여주기 싫은 것이라서 그런가?
가끔은 숨이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삶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에 그의 삶에 적당히 맞춰줄 수 있는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어서인가?
나이가 든 중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중년에게서 끌림이 느껴진다.
나카스키씨와의 만남은 고 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점점 나의 삶을 찾아야 하는 열망이 느껴진다.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나 이야기 하는 책은 아니다.
한 여자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감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고와 노리코.
그들의 삶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는 과연 노리코를 사랑한 것인가?
노리코는 과연 고를 사랑한 것인가?
철저히(?)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보여지지 않았다.
그냥 자기 위안이 있을 뿐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을 추구하는 그들의 삶 속에는 본인의 모습은 없다.
사랑하기에 아니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자신에게 비밀이 있어서도 안되며 아내의 삶 전부가 나의 삶이며 내 안에 속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자기 안에 그녀를 속박시켰다.
감시하고 가두고 하는 그런 것만이 속박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그는 그녀를 속박한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녀가 가졌던 과거의 시간까지도 속박하려 한 것이다.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그녀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머라 할 말은 없다만.)
그렇다면 그녀는 그를 사랑해서 그의 삶 안에 속박당한 것일까?
책속에 나오는 문구 중에 사랑에는 연극도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한다.
하지만 그녀는 과연 고를 사랑해서 연극을 했던 것일까?
행복이라는 것보다 사치라는 것을 좇아온 그와의 결혼생활 속에서 그녀는 아마도 그와의 익숙해져버린 사람을 버릴 자신이 없었기에 연극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아주 없다고는 말은 못하겠지만 그녀는 나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고 그가 그녀의 일기장을 보았다는 행위를 통해서 그 공간이 침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그와의 익숙해져 버린 사치라는 것을 과감히 벗어던져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을 보였던 고와 거짓연기로 충만했던 노리코 사이에는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 타인의 삶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은 것을 사랑이라 보여준 고의 모습은 자기 만족일 뿐이며 그가 이해하지 못하니깐 내가 이해해줘야해 라면서 안으로 삼키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여준 거짓연기로 가득찾 노리코의 모습 역시 자기 만족일 뿐인 것이다. 자기 만족에서 나오는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쓰다보니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 같은데 그만큼 이것저것 많은 생각의 실타레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싶으면 저것이 떠오르고 저것으로 끌고나가면 그것이 나오고...
작가가 3연작 시리즈로 내놓은 것 같은데... 전과 후의 이야기가 빨리 책으로 나와 만나봤으면 좋겠다.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의 실타레를 풀어준 아주 사적인 시간.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p.293
"연극할 마음이 필요한가요, 연애하는 데?"
"필요하죠!"
"부부사이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할 겁니다. 연극으로 서로에게 맞춰줄 필요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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