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없는 공간속에 외로움과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장미 비파 레몬
Read a Book 2009. 3. 7. 21:28
장미 비파 레몬 (薔薇の木 枇杷の木 レモンの木)
에쿠니 가오리 저 / 김난주 역
오랜만에 만난 에쿠니 가오리.
너무나도 그녀다운 이야기에 솔직히 할 말은 그리 많지도 않다.
단지 다 읽고 난 후에 떠오르는 구절 하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류시화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와 혼동하진 않길...)
어디서 본건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저 말이 왜이리도 머릿속을 맴맴 도는지...
그나마 저 말도 사랑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이 소설은 역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이 책 속에 있는 이들의 근원이 사랑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으로부터 시작이 되서 그런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도우코.
이미 결혼한 언니의 옛애인을 아직까지도 홀로 사랑하고 있는 소우코.
꽃집을 운영하면서 더 이상 남편과의 사랑을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에미코.
제일 세련되면서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보이나 뒤로는 모든 외로움을 끌어안고 사는 레이코.
삶 하나하나가 무료하고 더 이상은 코드가 맞지 않은 남편과 살아가는 것이 짜증일색인 아야.
이 남자의 모든 것이 좋아 작은 분신까지 품고마는 에리.
모든 것이 시니컬하게 느껴지지만 이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저돌적인 사쿠라코.
사랑이 깨어진 후 다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사는 미치코.
홀로 잘 살아가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사랑을 오래전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잊어버린 마리에.
p.175
요즘 들어 마리에는, 누군가와 같이 산다면 너무 늦지 않는 편이 좋다고 절감하고 있다. 여성 잡지에서도 줄곧 떠드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적령기란 말을 난센스라 여기는 모양이지만, 마리에는 뭔가를 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젊고 자신의 정열을 믿을 수 있고 무언가가 뒤틀려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생활의 자잘한 부분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데 길들기 전의 나이. 타인과 자신 사이에 놓인 어둠이 무엇인지 모색하기가 귀찮아지면 이미 때는 늦다.
p.307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곁에 있고 싶다고 상대가 필요로 하면 나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
더 필요시되고 싶은 욕망,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싶은 욕망.
p.311
연애란 멋진 것, 이라고 곤도는 생각한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타산이 없는, 즉 불필요한 것이 개입되지 않은 연애는 멋지다고.
p.323
서로의 사정에 유리한 결혼이었다. 사회라는 황량한 장소에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고,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p.344
부부가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보지만, 제 손으로 만든 리소토를 혼자 먹자니 서글프고, 츠치야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그 사람을 필요로 할까.
다들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갖고 결혼을 하고, 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활을 찾기 위해 결혼생활을 파탄내기도 한다. 각자의 입장으로 보면 참으로 이기적인 이유들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충족되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겠지만서도 참으로 서글프다.
9명 각자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는 모습은 다르지만 이들이 갈구하는 것은 하나같이 사랑이며 삶에 있어 사랑이란 것이 충족되어지지 않기에 이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미래의 내 인생의 동반자는 이 책속의 남편들과 같은 인물이 아니기만을 바래본다.
마지막 옮긴이(김난주)의 말이 공감이 가는 지라 적어본다.
그녀들은 외롭다고, 누구든 사랑해달라고 목 놓아 외치지 않을만큼 자립적이고, 집요하게 결혼이란 틀을 고수하면서도, 사랑이 무너진 순간 홀로 서기를 결심할 만큼 독립적이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꺾을 만큼 이기적인 한편, 언젠가 찾아올 사랑을 위해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알 만큼 과감하고, 때로는 자신의 성실함에 취해 남편의 외도를 눈치 못 챌 만큼 어리석고, 부부 싸움을 하고서도 남편이 보내주는 꽃다발에 웃음 지을 만큼 너그럽고, 자식의 아픔에는 한없이 약하며, 자신의 고독에는 눈물을 삼키는, 여자들 모두의 모습,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여자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