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오래된 정원


오래된 정원
황석영 저

올해(2007.01.10) 첫 책읽기로 집은 오래된 정원.
가슴 속 깊은 곳에 멍울을 심어놓은 느낌.
질퍽질퍽한 진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려 부스스 깨어져버리는 듯한...
이 소설에 대한 짧은 느낌이다.
상권을 읽으면서 빠져버린 진창속을 하권에서는 그 진창이 메말라 굳어버린 느낌이 들더라.
영화처럼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만나 사랑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들어낸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어우러짐 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도 싶다.
섬세하게 표현된 글자 하나하나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게 만들어버리고.
작가의 경험치 속에서 나온 글들은 먹먹한 가슴을 두드리게 만들어버렸다.
오래전 광주 민주화운동이 처음 대중매체를 통해 밝혀지던 날.
내가 살던 그 시절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버려 한동안 쏙쏙 빠져나온 방송들을 빠짐없이 보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난 이야기는 화면을 가득채웠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군부정권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만들어졌던 젊은 혈기들.
그들의 방황하는 그리고 고뇌하는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으랴마는 그래도 그네들의 뜨겁게 달궈진 열정들은 덩달아 나까지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어느 곳에 정착치 못하고 헤매이는 영혼 오현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영혼의 울부짖음이라고 해야할까.
그는 밖으로의 표출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을 흡수하고 또 흡수해서 가슴속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의 가슴속 울부짖음은 만기 후 나와 누님에게서 한윤희의 소식을 들으면서 멍하니 있다 아무말 없이 흘러내린 눈물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크게 울부짖을 수도 없었고 큰 소리를 내지를 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조용히 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그네의 안타까움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그가 도피중 만난 한윤희.
그와는 달리 차가운 열정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시종일관 차갑고 쿨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어쩌면 오현우라는 인물을 만나 그리 변해버리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단순히 그 하나만으로 변했다고 하기엔 그녀가 톡톡 내뱉었던 말투나 나름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원래 모습이 아닌가한다.
단순히 잠수를 타는 그에게 작은 안식처를 주었을 뿐인 그녀가 그의 영혼의 작은 안식처까지 되어버렸고 그가 떠나버린 그곳에서 또 다른 그를 품에 안고 살아간다.
그 이후에 두번째로 만난 남자 송영태.
그녀는 그를 통해 오현우가 가졌던 그 고뇌와 방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오현우에게 하지 못했던 울부짖음을 할 수 있었고 그를 조금이나마 도와주면서 오현우에게 해주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해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보상받으려 했던 것 같다.
머나먼 타지에서 만난 세번째 남자 이희수.
그는 그들(오현우나 송영태나)이 가보지 못했던 이상향에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편하고 안락함을 느끼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젊은 고뇌를 탈피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까. 여튼 그렇다보니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녀에게 작은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송영태에게는 주지 못했던 작은 구석자리를 그에게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온 그녀.
아무리 돌고 돌아도 그녀는 그의 품속일 수 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다 해도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차갑든 뜨겁든 그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 그녀는 그의 품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노선을 타고 있는 송영태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이해했고.이상향의 세계속에서 살고있다 생각한 이희수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그 이상향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그 무언가를 이해한것 같다.

올해 처음 선택한 책으로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말을 주저없이 할 수 있고 내 나름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소설이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담을 수 없었던 상권의 마지막에 교도소에서 본 비둘기며 고양이며 그네들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경험치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이상 절대 담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이 작은 곳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
솔직히 너무나도 딸린 내 글발로 이 소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족함이 절절 넘치긴 하지만 꼭 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멋진 글을 만났기에 그들을 만났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네들을 만나지 못했던 이들에게 꼭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은 오래된 정원.
절대 후회는 없을 거라 자부한다.

상 : 78 페이지. 
처음 여기 오던 밤에 나는 뺑끼통 위에 올라서서 먼 어둠속 허공에 몇점씩 빛나는 별을 보았소, 별인 줄 알았다가 산동네 가난한 창에서 보내는 불빛임을 이튿날에사 알아보았소. 초저녁에는 산허리에 불빛이 가득하더니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까울수록 한점 두점 사라져 저만큼 하나, 다시 저어만큼 하나씩. 그제사 창이 다시 별이 되는 연유를 새겨봅니다. 잠들지 못한 마음 별이 되는 지금, 내 것도 저기서는 별이 되겠지요.

상 : 142 페이지. 
알이 깨어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잖니. 고치 속에서 번데기는 다시 오랜 동안 긴 잠을 잔다. 그런데 고치를 부수고 나와 껍질을 벗고 고운 날개를 가진 나비로 변해서 푸르른 창공을 날아갈 즈음에는 이 나비는 그전의 벌레가 아닌 것처럼, 어머니가 된 여자는 그전의 여자가 아니야.

상 : 297 페이지.
보살은 자기가 보살행을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먹는 존재래. 악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대방을 닮아서 욕망의 뿌리를 다 잘라버릴 수는 없을 거야. 그게 세상살이의 한계란다. 그래두 그걸 무릅쓰는 젊은이는 아름답지 않니?

하 : 190 페이지.
사랑은..... 전체의 절반은 밥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같은 일상이고, 절반 중에 그 나머지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준단다.

하 : 232 페이지.
잠잘 때를 생각해봐. 온 밤내 같은 줄거리의 꿈을 꾸게 되지는 않아. 깨고 나면 몇 장면만 또렷하게 남곤 하지. 아무도 그 흐름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어요. 생이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들이 서로 끼여들지 않고는 어떤 대목이 중요했는가를 모르고 죽게 될 거야.

하 : 274 페이지.
인간의 삶은 한편의 시와도 같아 그것은 시작이 있는가 하면 종말이 있다. 단지 전체가 아닐 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자들 앞에서 두려워하랴? 아, 죽은 자들이여 그녀를 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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