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서머싯 몸 저 / 송무 역


황경신의 한 뻠 프로방스 여행기를 읽고 난 뒤 나름대로 필을 받아 집어든 책이 바로 서머 싯 몸의 달과 6펜스이다.
이 두 책간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솔직히 의문이지만.
그냥. 그 느낌이 그랬다.
그게 다다.
그리고 이 책을 집은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고 점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눈에 통증을 호소할 지경이었다.
한 인간에 대한 관찰이 그리고 한 인간의 방황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고.
그만의 매력을 느끼기엔 그의 방황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그간 지내온 자신의 모든 삶을 부정하고 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마치 세상과 단절하려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내심 부러우면서도 그 안에 깃든 홀로 싸우고 있는 그 만의 전쟁터가 처절하게 느껴졌기에 무서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든 것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 보기엔 온유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
평범한 가정생활과 상류사회 특유의 모임을 통해 적당히 사람들과 교류도 하며 지내던 그가 아내에게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떠났다.
가정사에 아무런 문제 없이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남편이 남겨준 편지 한 장의 배신감에 몸을 치떨게 만들고.
사회적 이목이 두려워 그에게 느끼는 배신감 마저도 마음 속 깊숙이 담아 닫아두어야만 했다.
그가 영원히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연민의 시선을 담아내기 위해 그녀는 세상의 온갖 슬픔과 고통을 담아낸 한 여인의 모습으로 분함으로써 주변의 동정적인 시선과 함께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내가 찰스를 찾아간 것은 그녀의 부탁을 시작으로 그와 두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꽤나 괴팍하지만 무언가가 나와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비슷한 코드로 편한 만남을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화가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프랑스에서 그는 냄새나고 작디 작은 골방에서 그림만 그리며 생계를 근근히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화가가 자신의 전부이지 생계는 그냥 살아남기 위한 부속일 뿐이다.
돈이 생기면 미술도구를 사는데 소비할 뿐 음식은 먹을수도 굶을수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구속감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안식처가 되주는 미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추운 방에서 홀로 앓고 있는 그가 안쓰러워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기꺼이 내놓는 스트로브.
그(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지독한 모욕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시대에 보면 멍청하리라는 판단이 들만큼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해서 순수하다고 할까? 그래서 그는 늘 타인들로부터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고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상물정을 알아버려 머리가 커버린 어른들이 그에게 내던지는 것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는 재능은 없으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이다.
사회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순진할만큼 때묻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미술에 있어서는 적당히 현시대의 조류에 맞춰 살아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스트릭랜드로 돌아가서...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내어준 스트로브의 아내와 동거를 시작한다.
여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의 아내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의 행적으로 보건데 자신에게 반해버린 그녀에게 모델을 요구하는 대신으로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준다는 일종의 묵시적인 계약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온갖 찌든 것들을 품고 사는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그네들에 대해 경멸과 멸시의 시선을 던지는 그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였을까?
모델과 성적관계라는 묵시적인 계약관계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어딘가에 묶여있길 싫어하는 그의 자유로운 사상에도 살짝 어긋남을 보여준다.
단순히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스트로브에게 최후로 던지는 모욕이었을까?

그녀와의 관계가 정리된 후 그는 처음으로 그림을 보여준다.
그 보여주는 행위는 나에게 이별을 알려주는 작은 메세지리라.

그 뒤로 그의 행적은 화자가 보고 느낀 것이 아닌 제 3자의 시선과 말을 통해서 전해 들은 것을 다시 담아낸 것이다.
온갖 험한 일을 행한 끝에 도달한 섬 타히티.
그곳은 그가 도달하고자 한 마지막 낙원이었으며 자신의 자유를 내뿜어 낼 수 있는 최대의 낙원이었다.
속고 속이고 가면을 쓰는 지금껏 보아온 온갖 가식과 허영을 뒤집어쓴 속물들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던 곳이고...
그곳이 자신의 마지막 정착지임을 깨닫고 온 몸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고갱을 모델로 하여 이 글을 썻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책 속에서 느껴진 그의 그림들은 붉디붉은 강렬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진실로 추구했던 삶을 쫓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삶들...
그런 그의 열정만큼이나 그는 무척이나 시니컬한 시선으로 세상사람들과 마주했다.
그 특유의 시니컬함이 없었다면 그는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던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현실은 책 제목처럼 달과 6펜스이다.
이상향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나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달이며...
지금 살고있는 이 현실은 불과 6펜스의 값어치밖에 안되는 곳이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이 현실에 대해 얼마나 조롱기가 가득한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남자 그리고 세 명의 여자가 나온다.
첫번째는 스트릭랜드 부인.
그녀는 가끔 저녁만찬과 티 파티 등을 통해 적당히 상류사회와 어울리며.
남편의 배신에 온 몸을 떨 지언정 주변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아내기 위해 가녀린 약한 이혼녀의 모습으로 분하고.
후에 남편의 그림이 크게 인정받음에 과거의 남편이 자랑스럽고 자신은 아직도 그에게 작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듯 보인다.
그녀는 세상의 시선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은 없다.
머.. 그게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과 동일하게 보아도 상관은 없지만.
세상의 시선속에서 그녀 스스로 보호받고 보호하기 위한 온갖 위선으로 가득한 삶만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다.

두번째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
그녀의 삶은 자신의 남편 스트로브로 인해 제 2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삶은 온갖 가식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버렸던 만큼 그녀의 새로운 포장은 과거를 감추기 위함. 그리고 자기합리화를 위함이었기에 온갖 가식과 거짓만이 살아숨쉬는 삶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 가면을 벗고자 했을 땐 죽음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세번째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동행인 아타.
그녀는 자기희생을 통해 자기애를 보여주는 여자였다.(아마도 작가의 이상형이 아니었을까.)
기존의 그가 만났던 여자와는 달리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던 여자.
그래서 그는 마음 편하게 그녀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청했고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그에 대한 사랑의 마침표를 찍어냈다.

가식과 허영이 들뜨는 현실과 자신의 꿈과 열정이 숨쉬는 이상향.
이곳이 바로 6펜스 그리고 달이 가리키고 있는 곳이다.
6펜스.
가장 작은 화폐로 작가는 현실을 그만큼의 가치만으로도 충분타라고 하는 듯 작가는 스트릭랜드로 분하여 시종일관 트집잡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커다란 포용력을 가지고 간 타히티.
그곳은 스트릭랜드가 꿈꾸는 자신의 혼을 놓고 자유로운 열정을 만끽한 달과 같은 이상향이다.

두서없음에 서글프고 이렇게도 멋진 작품을 이런 식의 표현밖에 할 수 없어 글을 타이핑하면서 시종일관 우울하게 만들었던 달과 6펜스.
그가 가진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발로 한 대 뻥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지만....
이 모든 것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융화가 된다.
2005년의 마지막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소설은 마지막작품이 아닌 2005년 내가 만난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p.77
나는,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p.206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없을 테니까.

p.254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던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드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p.259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 심기 : 200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