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저


용서와 이해.
마주보고 마주안기.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녀의 글발에 새삼 빠져들게 만든 책이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어쩌면 이 책이 작가 스스로가 만든 인생 최대의 절정을 일궈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흔하디 흔한 남녀가 만났다.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홀로서다.'라는 공식을 떠나서 나의 상처를 헤집고 타인의 상처를 마주보고 서로의 상처를 안고 다독이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렇게 평하기 이전에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이 책을 사서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파묻혀 글쓰기를 하는 몇 작가 중 한 명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진득하게 남아있는지라 이책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그녀의 책에 대한 평론을 보게 되었고 그래 읽어보자란 생각 끝에 근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어찌할 줄 몰랐고...
타인들의 시선을 받아들이긴 힘들어 코끝이 찡한 여유와 함께 찾아오는 뜨거운 눈시울을 참느라 엄청 고생했다.
사람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 버려진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강간이라는 피해로 끊임없이 자해를 하는 유정.
그녀는 자신이 당한 피해 이전에 버림을 받았다.
그 어떤 심판도 할 수 없다.
심판이란 것을 내리기 이전에 아니 그러한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남자의 눈을 홀리는 여우가 되어 질타를 받아야 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강간보다 더한 상처를 남겨주었다.
보호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사회적인 위치 등등에 의해 그녀의 상처는 안으로 깊숙히 묻어두어야 했고.
나 죽고싶소 이전에 살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은 철없는 아이의 행동으로만 보여졌다.

죄를 지어 사형수의 몸으로 교도소에 있는 윤수.
그는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버림만 받은 윤수.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그리고 그에게 커다란 빛이 되어주었다던 미용실의 그녀에게서...
그는 끊임없이 버림 받았다.
그의 그런 환경이 사회를 향한 원망과 울부짖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니 마음을 연다는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따스한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그에게 유정과 모니카 수녀님은 커다란 빛이자 희망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마주보고 그 상처를 안음으로써 벼랑으로 몰고간 나의 인생에 대해 나를 용서하고 나의 상처를 그리고 상대방의 상처를 어루안아 줌으로써 이해를 한다.

은수가 기억하는 유일한 노래 애국가.
제대로 된 변호도 못받아보고 제대로 된 검식절차도 없이 강간 살인범이 된 윤수.
저항 한 번 자신에 대한 변호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강간 피해자가 된 유정.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비틀기가 숨어있었다.
은수가 기억하는 애국가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어떠한 힘도 받을 수 없었고 거리에 내몰렸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제대로 된 변허를 받을 수 없었고.
유전자 검식절차 없이 그는 파렴치한 강간마가 되었다.
이를 행한자는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항변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피해사실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유정.
사회적 체면이라는 이유로 숨기기에 급급했던 부모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작가는 어쩌면 힘없고 약한 이를 보호해 주어야 할 임무를 가진 국가가 그들을 얼마나 거리로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지 항변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고 치유하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상처 역시 치유가 된다.
마음으로써 끌어안고 사랑하자.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다.

p.159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p.198
일 년에 봄이라는 계절이 한 번뿐이라는 거 당신 때문에 처음 알았어요. 이 봄을 다시 보기 위해 일 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자 당신이 말한 대로 이 봄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 봄처럼 내게도 느껴졌다는 거에요. 한 게절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죠. 그렇게 늘 오는 계절이, 혹여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계절이 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하루하루가 목이 타는 것처럼 애타게 지나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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