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의 빛 (海峽の光)


해협의 빛 (海峽の光)
츠지 히토나리 저 / 양억관 역

정말 보고싶었던 책 해협의 빛.
고려원에서 출판하고 출판사가 도산하여 헌책방에서도 구할 수 없었던 책이 인터넷서점에 입고되었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구입한 책이 바로 해협의 빛이다.

이 책을 그리도 원했던 것은 냉정과 열정사이 블루편을 읽고 그의 글에 반해버려서 그가 쓴 책은 모두 구입해서 읽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이 책 해협의 빛만 찾아볼 수 없었던 책이기에...
그리고 그가 수상한 이력을 만들어주었던 책이기에 너무나도 궁금했었던 것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이기에 그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겨주었는지...

우선 여지껏 보았던 소설하고는 많이 틀리다.
그래봐야 달랑 5권밖에는 되지 않지만..

이 소설에는 사랑이 없다.
단지 인간과 인간의 관계만이 이 안에서 숨쉬고 있을 뿐이다.

커다란 담장 안에 갇혀진 자 하나이...
그리고 커다란 담장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자 사이토...
하나이는 커다란 담장 안이라는 공간 속에 갇혀있지만 사이토는 공간적 세계를 넘어서 나라는 그리고 하나이가 어린 시절에 만들어주었던 세계 안에 갇혀 버린 자이다.

어린 시절 나를 이지메를 시키게끔 만들면서 학급이라는 무리내에서 왕으로 군림했던 하나이는 어른이 되어서 내(사이토)가 감시하는 세계인 곳에 들어왔다.
나는 하나이가 그 얼굴의 가면을 언제 벗을까 전전긍긍하며 그를 감시한다는 명목아래 지배자 계급에 놓인 것에 대한 안도감과 어린시절 왕으로 지배계급이었던 하나이가 만들어 놓았던 내 유년시절의 거대한 트라우마에 다시 한 번 빠져든다.
사이토의 공간안에 들어온 하나이로 인해 그를 감시하면서 그는 인간의 본질.
그리고 그 인간들이 살아숨쉬는 공간에 대한 고뇌를 한다.

하나이..
그는 사이토가 만들어 놓은 공간에 들어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는 사이토를 그의 인생에 있어서 영원한 약자로 만들어 자신만이 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그러한 힘을 보여준다.

하나이와 사이토...
그 둘의 아니 사이토가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둘의 관계는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차있고 그로 인해 사이토는 하나이와 같이 담장안의 세계에서 갇혀 지내는 것이다.

아주아주 솔직히.. 어렵다.
내용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다른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적 고뇌가 살아숨쉬는 듯 하여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긴장감이 살아났던 것이다.
내가 사이토가 되어 하나이를 바라보고 감시하며 안에 있는 나와 밖에 있는 나를 바라보고..
내 안의 세계와 내 밖의 세계를 바라보고...
여튼간에 보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리뷰를 꼭 써야지 하면서도 쉽게 쓸 수 없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너한테 쉬운 책이 어딨어! 하면 할 말은 없지만.. --;)
여튼.. 근래에 본 책 중에 상당히 난해하면서도 멋진 글이었다.
그 글 이후로 남겨졌던(?) 책 대부분이 연애사와 관련된 책이라 질량감으로 보면 그의 글쓰기는 점점 가벼워진 느낌이다.
요즘 추세가 그래서인가?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작가에 대한 아쉬움이 상당히 많이 남았다.

p.89
우리야 잠시 머물다 나오면 되지만 대장들은 참 힘들겠어요. 평생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p.121
나의 일상 생활을 배신하고 점점 나를 파괴하며 세포분열을 계속하는 이 현실 세계와, 시간이 멈춘 채 변하지 않는 그런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속에 두 세계를 교묘하게 갈라놓고 그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현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닌가.

p.162
세계란 어차피 둥근 구체 속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깨닫는 순간 나는 우주의 끝, 존재의 끝, 차원의 끝, 시간의 끝이 내 손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을 떠난 하나이도 죽은 아버지도 모두 내 손 안에 있다. 지구의를 돌리다 갑자기 양손으로 정지시키고, 둥근 별 모양을 상상해보고는 그것이 모든 것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즉 우주란 이 사주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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