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사유 (박기원 지음, 김은하 그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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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게 되면서부터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가 부재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의미들을 한시적으로나마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멸, 그 자체보다 비통하고 애절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정은 죽음에 대한 순수한 슬픔과 두려움, 그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던가?
시인 진이정의 유고에 시인 유하가 발문을 부쳤다.
살아남은 자의 몫은 죽은 자의 자취가 남긴 밭의 추억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라고.
마침내 그 추억하는 자조차 사라져갈 때, 분주한 추억 나무의 생장은 잠시 숨을 고른다고 말이다.
그렇다.
이내 곧 또 다른 살아남은 자가 그를 추억하는 순간, 다시 그 나무는 그 밭에서 생장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