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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20 힘내자구 힘!!!
- 2007.06.14 아주 사적인 시간 (私的生活)
- 2007.06.11 앤디 워홀 팩토리 전 (ANDY WARHOL FACTORY)
- 2007.06.04 병원에 갔다가 주저리 주저리.
- 2007.06.01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THE RELUCTANT TUSCAN: How I Discovered My Inner Italian)
- 2007.05.31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오르세미술관전
- 2007.05.30 밀양
- 2007.05.28 끄적끄적.
- 2007.05.22 숏버스 (shortbus)
- 2007.05.18 눈물이 주룩주룩 (淚そうそう)
힘내자구 힘!!!
: )
모든 것이 조금 사라지고 마는 때.
나름 힘내야지 하면서도 쉽지만은 않은 때.
어느 날 갑자기 날라든 메일 한 통.
기쁘기 그지 없다.
나름 힘내야지 하면서 채찍찔을 하게 만들어준 원인이 되었던 그것.
아직 산이 남아있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면 머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100을 다 버리진 못하지만 새로운 도전.
이 산을 잘 넘어설 수 있게 나 스스로 화이팅을 외쳐본다.
Fighting
がんばろう
아주 사적인 시간 (私的生活)

다나베 세이코(田邊聖子) 저 / 김경인 역
조제 이후 만나는 그녀.
조제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녀의 두번째 책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담담하게 써내려진 노리코의 이야기는 그냥 일상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다 읽고 난 뒤의 개운함 보다는 짭짜름한 소금내가 물씬 풍기는 듯도 하다.
어떠하다 라는 단정적인 말투로 맺음을 하기에도 무언가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76년에 쓰여진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도 세련된 표현들이 과거에 그것도 7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멋스러웠다.
이 소설로 인해 다나베 세이코라는 작가가 더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노리코.
그녀에게 있어 결혼생활은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멀다.
그를 사랑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와의 삶은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사치라고 부른다.
그와의 삶 안에서 나의 삶은 철저히 격리가 되어 있다.
친구들은 이 집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주소도 모른다.
그의 모임에는 나가지만 나의 모임에는 나가지 않은지 오래다.
그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안에서의 나를 보여주기 싫은 것이라서 그런가?
가끔은 숨이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삶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를 사랑하기에 그의 삶에 적당히 맞춰줄 수 있는 연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어서인가?
나이가 든 중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중년에게서 끌림이 느껴진다.
나카스키씨와의 만남은 고 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고 점점 나의 삶을 찾아야 하는 열망이 느껴진다.
단순히 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나 이야기 하는 책은 아니다.
한 여자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감정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고와 노리코.
그들의 삶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는 과연 노리코를 사랑한 것인가?
노리코는 과연 고를 사랑한 것인가?
철저히(?)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랑은 보여지지 않았다.
그냥 자기 위안이 있을 뿐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을 추구하는 그들의 삶 속에는 본인의 모습은 없다.
사랑하기에 아니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자신에게 비밀이 있어서도 안되며 아내의 삶 전부가 나의 삶이며 내 안에 속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자기 안에 그녀를 속박시켰다.
감시하고 가두고 하는 그런 것만이 속박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그는 그녀를 속박한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녀가 가졌던 과거의 시간까지도 속박하려 한 것이다.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그녀에게 보여준 모든 것들을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도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것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머라 할 말은 없다만.)
그렇다면 그녀는 그를 사랑해서 그의 삶 안에 속박당한 것일까?
책속에 나오는 문구 중에 사랑에는 연극도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한다.
하지만 그녀는 과연 고를 사랑해서 연극을 했던 것일까?
행복이라는 것보다 사치라는 것을 좇아온 그와의 결혼생활 속에서 그녀는 아마도 그와의 익숙해져버린 사람을 버릴 자신이 없었기에 연극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아주 없다고는 말은 못하겠지만 그녀는 나름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도망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고 그가 그녀의 일기장을 보았다는 행위를 통해서 그 공간이 침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 그와의 익숙해져 버린 사치라는 것을 과감히 벗어던져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을 보였던 고와 거짓연기로 충만했던 노리코 사이에는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 타인의 삶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은 것을 사랑이라 보여준 고의 모습은 자기 만족일 뿐이며 그가 이해하지 못하니깐 내가 이해해줘야해 라면서 안으로 삼키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여준 거짓연기로 가득찾 노리코의 모습 역시 자기 만족일 뿐인 것이다. 자기 만족에서 나오는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쓰다보니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 같은데 그만큼 이것저것 많은 생각의 실타레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이것인가 싶으면 저것이 떠오르고 저것으로 끌고나가면 그것이 나오고...
작가가 3연작 시리즈로 내놓은 것 같은데... 전과 후의 이야기가 빨리 책으로 나와 만나봤으면 좋겠다.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의 실타레를 풀어준 아주 사적인 시간.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p.293
"연극할 마음이 필요한가요, 연애하는 데?"
"필요하죠!"
"부부사이에도?"
"사람에 따라서는 필요할 겁니다. 연극으로 서로에게 맞춰줄 필요도 있겠죠."
앤디 워홀 팩토리 전 (ANDY WARHOL FACTORY)

(ANDY WARHOL FACTORY)
2007.03.15 - 2007.06.10 삼성미술관 Leeum
매번 간다고 하고서 가기 힘들었던 리움.
전시회가 종료되는 그 주에 다녀왔다. (꽤나 일찍 포스트를 남기는 듯.. --;)
한강진 역에서 부터 보이는 이정표가 리움으로 가는 길을 쉽게 알려 주어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모던한 느낌의 건물에서 눈 한 번 돌려주고.
건물만큼이나 높은 천정과 함께 시원하게 뚫려있는 공간 역시 멋스러웠다.
전시회 구성 또한 마음에 들었다.
일러스트가 그려진 벽면에 놓인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으로 구성된 일러스트가 앤디 워홀스러웠고 작가의 작품 성격을 알 수 있는데 한 몫 도와준 듯도 하다. 일러스트가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방해도 없었으니 얼마나 멋스럽게 구성되어진 전시회가 아니었나 싶다. (만족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지.)
앤디 워홀전이 막 시작했을 무렵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5부작 미술의 앤디워홀 편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당시에 본 다큐멘터리로 인해 전시회를 보러가리라 마음도 먹었다. (그런 마음속 다짐에서 실천에 옮기기 까지 꽤 긴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실천했으니 좋은거지.. ^^)
여튼.. 최근에 본 전시회 중 가격대비 만족도(한가람 미술관이나 시립미술관의 높은 관람료에 비하면 매우 적은데다 예매를 하고 가니 30%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가 가장 높았던 전시회가 아니었나 싶다.
그냥 주저리 남기는 글 하나.
서울시립에서 모네전을 하는데 심히 고민중이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름만 비슷한 마네의 전시회를 한다면 주저없이 달려갈텐데 모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아닌지라...
할인권은 이달 말까지인데 정말 고민중이다.
병원에 갔다가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 하나.
감기 지대로 걸렸다.
환절기때를 피하지 않는 감기.
무사히 겨울에서 봄나기를 건너는가 싶더니 여름나기를 못건너는구나.
오뉴월의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된장. --;
목이 너무 아파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다.
예전부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물약이 나온다.
물약 먹기 싫은데... 난 어린이가 아닌데...
벌써 1통을 다 먹고 두 통째를 받아왔다. (한마디로 병원 방문 2번째)
온 몸이 근질거린다. 밖으로 나오라고...
언제쯤이나 감기군과 이별을 할 수 있을까...
조금은 못된 심보일까?
감기군과의 사랑을 나누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살짝 위로를 해본다.
ㅋ.ㅋ.
이야기 두울.
요즘 읽고 있는 책이 하나 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기도라는 말이 나와는 거리가 멀기에 살짝 주저하긴 했지만 나름 괜찮을 듯 해서 읽기 시작했다.
이제 초반부를 읽기 시작했으니 무엇이다라고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저자가 나와는 꽤나 다르다. 아니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나 해야할까.
(머.. 나 같은 이가 뉘가 있겠냐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명상을 통해 극복해 간다는 그녀의 3 i (이탈리아.인도.인도네시아 여정) 여정기라고 하는데...
거리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다 보니 읽다 딴 생각도 많이 들고 왜 그래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나오고... 여튼 머라 하기 힘든 지은이에 대한 짜증이 오른다.
그런데 왜 읽고 있을까?
머..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한다는 말처럼 이왕 읽기 시작한 것 끝을 보자라는 마음으로 보고 있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지 않겠어?
나중에 다 읽으면 리뷰글이나 남겨야지. (지금 쓰다만 리뷰나 마저 쓰시게나.. 쩝... --;)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THE RELUCTANT TUSCAN: How I Discovered My Inner Italian)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THE RELUCTANT TUSCAN: How I Discovered My Inner Italian)
필 도란 저 / 노진선 역

여튼.. 이 책은 작가의 토스카나 정착기 정도가 되겠다.
더 이상의 히트작은 없다.
기나긴 시간을 방송작가로서 몸바쳐 일해 왔건만 지금 필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무기력함이 짜증을 불러오고 급기야는 아내가 몰래 이탈리아의 집을 마련했다.
이곳을 버리고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아가자는 아내의 말.
내 평생을 살아온 곳인데 이렇게 쉽게 버리고 갈 수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삼아 찾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도시생활에서 제대로 벗어난 기억조차도 없는데 살금살금 흘러가는 시간이 이곳도 흐르는구나 라고 알 수 있지 너무나도 여유롭다.
그 여유로움에 숨이 막힌다.
헤어짐도 생각해 봤지만 쉽지는 않다.
아내와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쉽지만은 않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조금씩은 낯선 타인에게 감춰진 모습이 화가 난다. 아마도 아직 내가 여기 생활에 젖어들지 못해 그들에게 동화되지 않아 느껴지는 것들이 아닌가?
조금씩 조금씩 그들과 함께 살아 숨쉬며.
그들과 함께 그들처럼 식사를 하고 여유를 부리다 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그렇게 물이 들어간다.
지금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느린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한낮의 잠을 즐기며 함께 기뻐하고 나누면서 느껴지는 것은 가면이 벗겨진 진실한 마음이 그대로 우러나오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작가처럼 도시생활을 벗어나 살아본 적은 없다.
나름 여유를 갖고 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는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에 쫓기고 무언가를 한다하는 행위를 해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것들...
나한테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겠어요? 라고 묻는 다면 힘들지 않을까 하고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세상을 향한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작가 필 도란 처럼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곳에서 함께 살아 숨쉬고 싶다.
p.361
내 생체 시계에도 변화가 일어나 이탈리아에서는 훨씬 천천히 흘러간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느라 바쁜데 나 혼자 급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는가.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훨씬 덜 급해졌고, 나는 좀더 평온해졌다.
만종과 거장들의 영혼 오르세미술관전
(Musee d'Orsay)
2007.04.21 - 2007.09.02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
전시회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은 전시회.
그래서인지 조금 아주 조금 붐비지 않아 좋았다.
눈쌀을 찌뿌리게 만들었던 관람객도 없었고 그냥 마음 편히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어 나름대로 좋았던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기대한 것은 에드아르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일상속에 묻어둔 그의 정신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던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고흐의 방.
발레복의 밝은 향연 아래 오케스트라 박스 안에서 연주중인 관현악단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에드가 드가의 오페라좌의 관현악단.
요람속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
총 4가지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밀레의 만종을 큰 구역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닥 별 감흥이 없었다. ^^;
몇몇 작품에서는 급하게 복원을 한 것인지 보관상태가 안좋았던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어 조금 아쉬웠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높게 책정된 관람료는 참으로 우울하게 만든다.
몇몇 작품들 때문에 관람료가 오른 것인가..
쩝... 아쉬운 건 아쉬운거다.
밀양

감독 이창동
배우 전도연 / 송강호
가슴이 흠칫흠칫.
화도 난다.
안에서 끌어나오는 그 무언가가 쿡쿡 쑤셔온다.
비록 영화일지라도 말이 씨가 되듯이 그녀의 말이 창처럼 느껴진다.
그녀에게 내려진 볕은 보는 것처럼 따뜻했을까?
영화 본 후 느낌을 막연하게 나열해 본 것이다.
보고난 후 결코 해피하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말한 것처럼 우울함의 구렁텅이에 빠진 느낌이 들 뿐이다.
여전히 이창동스러운 영화 밀양.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더 깊어진 듯 하여 더 우울해졌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온 밀양.
자신의 비밀을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아무도 모르는 타인들만이 존재하는 낯선 곳 밀양에 찾아왔다.
가슴 속 깊이 묻어둔 곳은 그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않는다.
단순히 지아비를 잃고 찾아온 지아비의 고향이라는 것 뿐.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치장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것만이 살 길인 마냥 그녀는 스스로를 포장하고 산다.
그래서 첫번째로 슬펐다.
이렇게 겉치장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째 슬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어 뛰어간 그곳 그리고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던 그 길에서 그녀는 절망을 맛본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어를 걸어놓은 것을 잃어버린 채 핸들을 부술 것 마냥 잡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불안의 그 끝에서 오는 것만 같았다. (이 장면에서 그 놈 목소리의 김남주의 모습이 생각나더라.)
모든 것들을 외면한 채 슬픔도 억누르고 자신의 온 감각을 아이의 목소리에만 부여잡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삶의 한 조각을 잃어버린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두번째로 슬펐다.
그 어느 것도 그녀의 깊은 내면을 터뜨릴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이제서야 마음이 든 것인데...
솔직히 그 마음이란 것도 위선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위선.
큰 소리로 울부짖었지만 그것 뿐이다. 내면의 어느 한 곳을 닫아두기 위한 울부짖음.
그렇게 그녀는 가슴 속에 또 하나를 담고서 덮고 온 세상이 아름다운 것 마냥 나를 또 다시 포장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아무리 위선으로 뭉쳐있다 해도 이를 틈 타 이제서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는데.
내가 하지도 못한 것을 그가 했단다.
해도 내가 하는 것인데 그것만큼은 내가 하는 것인데 신이란 이름으로 그가 했단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덮어두었던 세계가 휘몰아쳐 오른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서있는 그. 종찬.
능글맞는 표정으로 장난스럽게 시작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진심어린 눈으로 다가온다.
그녀가 어떠한 얼굴로 서있던 간에 그는 그녀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돈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도 없다.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지만 그녀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는 바라는 마음이 아닌 오로지 주는 마음 하나로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은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올곧은 시선을 느낄 수 있어 따스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교회이야기 안할 수가 없다. (전도라는 이름 하나로 쏟아진 말 한 마디에 아무리 영화속 이야기라 하더라도 너무나도 화가 났다. 참고로 교회하고는 거리가 멀다. ㅎ.ㅎ.)
그녀가 잠시 정체했던 곳이 교회이니 말이다.
여기저기 그녀가 교회를 찾은 것은 구원의 손길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라고 하지만은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구원의 손길을 바라마지 않은 것도 없을 수는 없지만 그녀가 궁극적으로 바란 것은 자기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또 다른 구실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비록 힘에 겹더라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런 삶의 본능이 찾은 곳이 교회인 것 뿐이다.
그 본능 하나로 시작한 신자로서의 삶은 용서라는 이름 하나로 그녀는 내쳐버렸다.
그곳에서의 삶은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렇게 쉽게 내칠 수 있었던 것이다.
고여있는 물에 내비친 볕처럼 그녀도 그녀 자신에게 내리쬐는 볕은 찾았을까?
먹먹한 아픔을 느끼기 보다는 끌어오르는 울분에 우울함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한 밀양.
적절히 치고 빠져주는 종찬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기에 전도연의 말처럼 신애라는 또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시킬 수 있었고 이 두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에 밀양이라는 영화가 만들어 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붙여두는 한 마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밀양이라는 영화를 통해 상을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밀양시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뭔가 싶다.
밀양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대로일 뿐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 숨쉬는 곳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무 오버하는 행정이 아닌가 싶다. 쩝...
끄적끄적.
스킨을 바꿔봤다.
만들까도 싶었지만 구챠나서 패스~
루이스님의 스킨이 깔끔하니 이쁘길레 바꿔봤다.
티스토리 다 좋은데 글쓰기에서 이미지 넣을때 탑센터정렬밖에 안되더라.
이거 어케 해결 안될까?
내가 주로 사용하는 건 탑 레프트 정렬인데.. 안되드라.
html 편집기로 바꿔도 안돼. 별도 계정에 링크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엔...
내가 방법을 모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쩝...
주말에 밀양을 봤다.
이창동 감독이라서 봤다.
전도연이 나와서 봤다.
송강호가 나와서 봤다. (음.. 그의 영화 중 안 본 영화도 있을꺼야.)
한국영화 중 감독. 배우 이름 선별하고 꼭 보는 영화가 있는데 밀양이 이 3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에 주저함 없이 봤다.
보면서 칸 영화제 대상은 힘들겠지만 여우주연상은 받겠군 싶었는데 오늘 아침 뉴스에 여우주연상 수상했다고 하더라.
축하~
조만간 리뷰글이나 남겨야지.
숏버스 (shortbus)
감독 존 카메론 미첼
출연 숙인 리 / 폴 도슨
외설이냐 예술이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가십기사가 많이 나온 영화 숏버스.
5월의 볼 영화는 마이 베스트 프랜드 이후로 밀양과 캐리비안의 해적만 남겨두었는데 스폰지하우스에서 시네휴 오케스트라라는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숏버스도 개봉한다고 하더라. 잠깐 고민 좀 했다.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 주말에 무작정 나가서 보게 된 영화
숏버스. 보길 잘 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시작 5~10여분의 강렬한 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헉하고 놀라움을 가져다 준다. 여기저기 헉 하는 소리에 극장이 놀라움으로 들썩거렸으니 말이다. 여튼 첫 씬을 보고 이 영화를 단순히 어떠하다라는 말로 정의내리기엔 너무나도 성급하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을 감정을 에스/이/엑스라는 코드로 풀어갈 뿐이다.
커플문제 상담사라고는 하지만 성문제 상담사인 소피아.
타인의 문제를 듣고 해결방안을 내놓아주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어쩌면 거짓된 관계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한구석에서 찾아드는 무언가가 발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허덕이는 제임스.
타인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받고 있는 게이커플이지만 무언가가 부족하다.
사랑이 충만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만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헤매이고 있다.
이 힘겨운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하지만 제이미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상대 제이미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숏버스라는 작은 세상.
그 안에는 완전한 존재는 없다.
누구나가 불완전한 존재이며 외로움의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해답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서 그들은 빛을 본다.
제임스는 자신안의 또 다른 존재를 죽임으로써 자신을 찾아냈다.
그리고 소피아는 또 다른 대안을 찾아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살색의 색상들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단순히 그 문제만이 아닌 더 깊은 무언가가 남겨진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눈물을 참느라 고생했다.
무어라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면의 이야기들을 담아낸 영화 숏버스.
한 번쯤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눈물이 주룩주룩 (淚そうそう)

눈물이 주룩주룩 (淚そうそう)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 나가사와 마사미
개봉전 시사회를 통해서 미리 본 영화.
솔직히 시사회라는 것이 아니었으면 절대 가서 보지 않을 영화이다.
감성이 무뎌서 그런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흐름을 흐뜨러뜨리는 그 무언가가 너무나도 싫었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같이 본 친구는 조제에서 참으로 멋있게 느껴졌던 츠마부키 사토시가 이리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매체 광고에서는 일본판 가을동화라고 하는데 가을동화를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도 이렇게 흐름이 깨졌을까 싶기도 하다.
숭덩숭덩 잘려나간 느낌의 스토리 진행은 관객이 무언가를 받아 몰입도 하기전에 깨져버리고.
개인적으로 더 크게 깨뜨렸던 것은 나가사와 마사미의 목소리였다.
조금은 많이 오버된 듯한 깨지는 듯한 목소리는 감정에 깊숙히 빠져들게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배우의 이름 하나만 이쁘게 보이려는 그것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했다.
일본에서 개봉 후 2주간 1위를 했다던데.. 아무래도 그것은 배우의 유명세탓이 아닌가 싶다.
츠마부키 사토시 덕에 꼭 봐야겠다고 한다면 만류는 못하겠지만 감정이 녹아드는 멜로영화를 보기 위해 선택한다면 절대적으로 말리고 싶다.
(잘못하면 올해 최악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