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a Book'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9.03.20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 2009.03.19 도쿄 타워 (東京タワ-)
  3. 2009.03.19 마시멜로 이야기(Don't eat the Marshmallow. Yet!)
  4. 2009.03.16 파이 이야기 (LIfe of Pi) 1
  5. 2009.03.16 맛 (The Best of Roald Dahl)
  6. 2009.03.13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황경신의 프로방스 한뼘 여행
  7. 2009.03.13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2
  8. 2009.03.12 내가 만난 두 사람의 클림트 3
  9. 2009.03.12 소설 속 오래된 정원
  10. 2009.03.12 On the road :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저


용서와 이해.
마주보고 마주안기.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녀의 글발에 새삼 빠져들게 만든 책이 바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다.
어쩌면 이 책이 작가 스스로가 만든 인생 최대의 절정을 일궈낸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흔하디 흔한 남녀가 만났다.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홀로서다.'라는 공식을 떠나서 나의 상처를 헤집고 타인의 상처를 마주보고 서로의 상처를 안고 다독이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는 그러겠지. 그게 그거 아니냐고...
그렇게 평하기 이전에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이 책을 사서 읽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그닥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의 피해의식에 파묻혀 글쓰기를 하는 몇 작가 중 한 명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진득하게 남아있는지라 이책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디에선가 그녀의 책에 대한 평론을 보게 되었고 그래 읽어보자란 생각 끝에 근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다.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어찌할 줄 몰랐고...
타인들의 시선을 받아들이긴 힘들어 코끝이 찡한 여유와 함께 찾아오는 뜨거운 눈시울을 참느라 엄청 고생했다.
사람의 눈물이 얼마나 뜨거울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 버려진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강간이라는 피해로 끊임없이 자해를 하는 유정.
그녀는 자신이 당한 피해 이전에 버림을 받았다.
그 어떤 심판도 할 수 없다.
심판이란 것을 내리기 이전에 아니 그러한 판단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남자의 눈을 홀리는 여우가 되어 질타를 받아야 했고 그것은 그녀에게 강간보다 더한 상처를 남겨주었다.
보호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사회적인 위치 등등에 의해 그녀의 상처는 안으로 깊숙히 묻어두어야 했고.
나 죽고싶소 이전에 살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은 철없는 아이의 행동으로만 보여졌다.

죄를 지어 사형수의 몸으로 교도소에 있는 윤수.
그는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버림만 받은 윤수.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그리고 그에게 커다란 빛이 되어주었다던 미용실의 그녀에게서...
그는 끊임없이 버림 받았다.
그의 그런 환경이 사회를 향한 원망과 울부짖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열 수가 없었다.
아니 마음을 연다는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따스한 사랑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그에게 유정과 모니카 수녀님은 커다란 빛이자 희망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마주보고 그 상처를 안음으로써 벼랑으로 몰고간 나의 인생에 대해 나를 용서하고 나의 상처를 그리고 상대방의 상처를 어루안아 줌으로써 이해를 한다.

은수가 기억하는 유일한 노래 애국가.
제대로 된 변호도 못받아보고 제대로 된 검식절차도 없이 강간 살인범이 된 윤수.
저항 한 번 자신에 대한 변호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강간 피해자가 된 유정.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비틀기가 숨어있었다.
은수가 기억하는 애국가는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는 노래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어떠한 힘도 받을 수 없었고 거리에 내몰렸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제대로 된 변허를 받을 수 없었고.
유전자 검식절차 없이 그는 파렴치한 강간마가 되었다.
이를 행한자는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항변은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피해사실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유정.
사회적 체면이라는 이유로 숨기기에 급급했던 부모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작가는 어쩌면 힘없고 약한 이를 보호해 주어야 할 임무를 가진 국가가 그들을 얼마나 거리로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지 항변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고 치유하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상처 역시 치유가 된다.
마음으로써 끌어안고 사랑하자.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싶다.

p.159
살고자 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어쩔 수 없는 본능과 같은 건데,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

p.198
일 년에 봄이라는 계절이 한 번뿐이라는 거 당신 때문에 처음 알았어요. 이 봄을 다시 보기 위해 일 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자 당신이 말한 대로 이 봄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 봄처럼 내게도 느껴졌다는 거에요. 한 게절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죠. 그렇게 늘 오는 계절이, 혹여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계절이 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하루하루가 목이 타는 것처럼 애타게 지나간다는 거...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5.10.24 -


도쿄 타워 (東京タワ-)


도쿄 타워 (東京タワ-)

에쿠니 가오리 저 / 신유희 역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냉정과 열정사이 Rosso편이었으며 도쿄 타워가 오기까지 마지막 작품은 낙하하는 저녁에서 였다. 그녀의 작품 중 주변 추천작은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원제:いくつもの週末)였으나 그녀의 작품을 낙하하는 저녁 이후로 보지 않게 된 연유는 바뀌지 않는 역자(김난주) 때문이었다.
난 문학에 대해서도 번역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문학책의 번역은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감성을 얼마나 더 잘 표현하냐 하는 것이 역자의 우량이라고는 하지만 과도한 의역과 역자 뜻대로의 명칭 정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고전에서 현대물로 바꾸는데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명칭 변경도 아닌 주인공이름을 바꾸다니.. 정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 아닌 분노를 느꼈고 이에 따라 그녀의 이름으로 번역이 된 책은 보지 않음에 있어서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제일 많이 번역해온 역자 입장에서는 작가의 감성을 더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표현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있지만... 머..
여튼간에... 낙하하는 저녁 이후 오랜만에 만난 책이 바로 도쿄 타워다.

나른한 오후 해질녘 땅거미가 스르르 지는 시간.
따스한 커피 한 잔과 떨어지는 낙엽들...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나.

작가가 나에게 주는 감성 코드 중 하나이다.
그만큼 외로운 홀로서기.
가슴 속에서 받혀오는 사막같은 건조함 속에 뜨거움들이 느껴진다.

어머니의 친구 시후미를 사랑하는 토오루.
어머니의 소개로 알게 된 그녀. 그리고 그녀에게 조금씩 침식당하는 토오루.
토오루는 그렇게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그녀의 전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녀와 함께 나누는 시간이...
내 세계는 시후미를 향하여 돌고 시후미와 함께 돌며 시후미가 내 세계의 중심이다.
그래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과 다른 공간에 있는 이 시간이 점점 힘겨워진다.

게임과도 같은 사랑을 즐기는 코우지.
가벼운 즐김으로 시작해서 끝나는 연상의 여인 키미코와의 사랑.
연상의 여인에게서 느낄 수는 없지만 편한 친구와도 같은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유리와의 사랑.
나 코우지는 묘한 스릴감이 있는 쾌락과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쾌락 그 사이에서 헤매이고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면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두 곳에 있는 나는 나이다.
이것들이 내 나름대로의 사랑의 방식이며 진지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지만 내 시간을 즐겁게 가질 수 있는 사랑이다.

이 둘의 사랑의 공통점은 바로 연상과의 불륜의 사랑이다.
소년들의 시점으로 흐르다보니 불륜 이전에 이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그네들 나름대로의 진지함 그리고 고민들을 가지고 그네들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 말이 왜 이러냐.. --;)
나름대로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토오루와 코우지의 사랑.
하지만 역으로 시후미와 키미코의 사랑은 어떤가?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전.
남편과의 둘 만의 공간에 들어가기 전.
그네들의 안정감의 공간과는 별도로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틈틈히 내 시간을 채워줌으로써 비워진 공간에서 올 수 있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내 안정된 공간에 대한 편안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시후미와 키미코)는 이기적이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 사이에 숨어있는 그녀들의 이기적인 사랑이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불륜의 사랑을 아이들의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각으로 표현해낸 작가가 참으로 대단하다.
홀로 떨어져 있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맡고 있는 듯한 기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소설 도쿄 타워.
영화로도 개봉될 예정이라는데...
영화에서는 어떠한 시각으로 그네들의 사랑을 표현할 지 궁금하다.

덧.
그녀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 중 이번편까지 총 5편의 소설을 읽어보았다.
그 중 개인적으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라는 책이 가장 좋았다.

p. 36
"사람과 사람은 말야, 공기로 인해 서로 끌리는 것 같아."
언젠가 시후미가 그렇게 말했다.
"성격이나 외모에 앞서 우선 공기가 있어. 그 사람이 주변에 발하는 공기. 나는, 그런 동물적인 것을 믿어."
 
p.115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시후미와 연결된 시간. 이곳에 시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시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p.327
"누구든 태어난 순간에는 상처 입는 일이 없어. 나,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예를 들어 어딘가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거나, 병약하거나, 몹쓸 부모를 만난다 해도, 녀석이 태어난 순간에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아. 인간이란 모두 완벽하게 상처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뿐이라고 할까, 죽을 때까지, 상처는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5.11.14 -

 

마시멜로 이야기(Don't eat the Marshmallow. Yet!)


마시멜로 이야기(Don't eat the Marshmallow. Yet!)
호아킴 데 포사다, 엘렌 싱어 저 / 정지영 역


주로 읽는 소설책외에 건드려 본 책. 마시멜로 이야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나 "선물"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로...
당연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망각하면서 살고지내기에 툭~하고 던져주는 보따리이다.
기존의 여느 책들과 마찬가지로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의 특성 상 하루 몇 시간도 채 안 걸려서...
정확히는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시간동안에 읽어버린 책이다.
(아마. 제일 빠른 시간에 읽은 책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마시멜로를 통해서 지금 당장의 달콤한 맛 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투자해라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인가? 책의 원제도 지금은 마시멜로 먹지마! 라고 하니...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느냐 마느냐는 단순히 꿈꾸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행동이 필요하다.
단순히 실천이라는 행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또는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느냐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자리 걸음만 하는 꿈꾸는 이는 이제 가고 한 보 내딛을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한 이들에게 던져주는 작은 이야기이다.

p.34
중요한 건 눈앞에 펼쳐진 작은 만족과 유혹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 그 보상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는 자세일세. 정해진 날짜, 정해진 장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성공'의 결실이 돌아온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지금 당장의 작은 만족을 큰 성공으로 만들어갈 줄 안다는 뜻이네.

p.71
사람은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이나 사건들을 대부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할 수 없게 마련이지. 반면에 나 자신은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네. 그래서 나의 행동 방식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떤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은 사건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네. 내가 모범을 보이면 엄청나게 큰 영향력, 다시 말하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그것이 바로 성공에 이르는 가장 강력한 도구네.

p.93
성공은 과거나 현재의위치에 달려 있는 게 아닐세. 성공은 성공하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네. 그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날이 바로 성공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떼는 날이지.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것일세.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5.11.22 -

파이 이야기 (LIfe of Pi)


파이 이야기 (LIfe of Pi)

얀 마텔 저 / 공경희 역


친구가 회원으로 있는 북샵에서 무슨 책을 사면 좋을까 추천바란다고 하기에 입솝문이 좋앗던 이 책을 권해주었다. 내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배짱으로 권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 올라왔던 서평이 좋았던지라 적극 권장하였고 선뜻 손이 안가 구매하지 못했던 이 책은 그 친구에게 빌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책 너무 재미없어서 도저히 못읽겠어 하면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손으로 건너왔고 11월의 2주간을 나와 함께 지낸 책이 바로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이다.
첫 장을 넘길때 솔직히 그 친구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너무나도 지루하고 지루했다.
어쩌면 파이가 당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나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데다가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 또한 나에게는 이해가 되질 않는터라 정말 중간에 손을 놔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루했다.
그래서인지 첫 장의 진도를 빼기가 너무나도 힘겨웠고 그 덕에 장장 2주라는 시간을 거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첫 장이 다 지난 후 본격적인 그의 모험이야기는 너무나도 흥미진진했고 왕복 출퇴근 2시간은 이 책의 책장을 넘기기엔 너무나도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막장은 늦게 퇴근하는 친구를 기다리겠다는 핑계로 까페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말에 할 말을 잃었고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헷갈리기까지 했다.

1부 토론토와 폰디체리, 2부 태평양, 3부 멕시코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토론토와 폰디체리.
피신 몰리토 파텔. 줄여서 파이 파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동물원은 무료로 출입하고 다른 일반인보다 더 많이 동물을 알았다. 그런 나에게는 종교가 3가지이다.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는 간디의 가르침에 이어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라고 외치는 파이.
어느 날 인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판단에 가족은 캐나다 이민을 결정. 동물원을 정리하고 몇몇 동물들과 함께 화물선에 오른다.

2부 태평양.
갑작스런 사고로 태평양 한 가운데 조난을 당한 파이.
넓고 넓은 바다 한 가운데 작은 세상인 배 안에 다리를 다친 얼룩말, 점박이 하이에나, 오렌지쥬스 오랑우탄 그리고 오랜 시간을 바다 한 가운데 작은 감옥에서 함께한 리차드 파커 뱅골호랑이가 파이의 동행자였다. 살아남기 위해 모포에 겨우 숙이고 들어간 파이. 그 안에는 모두들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생존다툼이 있었다. 그들에겐 공존이란 있을 수 없는가? 오랜 시간 자신이 자라온 환경 덕에 공존을 통한 생존보다는 먹고 먹임을 당하는 피라미드형의 생존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후로 살아남은 리차드 파커와 파이.
내가 살기 위해 리차드 파커와 평화협상을 갖고 그 안에서 자신이 우위임을 보여주기 위한 길들임을 시작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길들여지는 것이 아닌 리차드 파커 나름대로의 생존을 위한 남모를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사일생 끝에 살아난 리차드 파커와 파이.
리차드 파커는 잘 가라는 잘 있으라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아쉬움의 발걸음조차 주저함이 없이 그렇게 떠나가고 파이는 사람들에 의해 구조를 받는다.

3부 멕시코 토마틀란의 베니토 후아레스 병원.
주민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파이.
파이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오는 일본 운수성 해양부의 직원이 찾아와 파이와 일대일면담의 기록들을 담은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서 경악하게 될 진실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실을 감추기 위한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어떠한 것이 진실인지는 독자가 판단해야한다는 것만 남겨둔채...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소년의 생존이야기가 담겨진 모험소설이 아니다. 단순한 모험소설로만 분류하기엔 파이의 사상이 너무나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3부에 나타난 결말은 극악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니...
신에 대한 믿음.
살아남기 위한 처절하면서도 무서운 생존의 의지.
인간과 인간의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이 소설에는 담겨져 있다.
2부 태평양을 시작으로 3부로 귀착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이 1부에서 파이가 바라본 동물원의 동물들의 모습과 각 종교에 대한 나름의 판단과 믿음이 모두 압축이 되어 있다.
거꾸로 지루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1부의 파이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가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라는 것이다.
파이가 바라본 동물원의 모습은 결코 동물원 안의 동물들의 모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 그리고 생존을 향한 의지가 살아숨쉬고 있었고.
파이가 가지는 3가지 종교이야기는 단순히 신에 대한 믿음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파이의 마지막 말이 너무나도 크게 진한 여운으로 자리를 잡아버려 어떠한 것이 진실이고 아닌지는 판단할 수가 없다.
그가 말하고 있는 이 두가지의 결론은 어떠한 입장에서든 끔찍하고 비극적이기에 판단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궁금한 이는 지루하다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꼭! 읽어보길 바란다.


p.17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이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p.96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p.204
근본을 흔드는 공포, 생명의 끝에 다가서서 느끼는 진짜 공포는 욕창처럼 기억에 둥지를 튼다. 그것은 모든 것을 썩게 한다. 그것에 대한 말까지도 썩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힘껏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피하려 하고 심지어는 잊으려 하는 고요한 어둠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더 심한 공포의 공격에 노출된다. 우리를 패배시킨 적과 진정으로 싸우지 않았으므로.

p.375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5.12.01 -


맛 (The Best of Roald Dahl)


맛 (The Best of Roald Dahl)
로알드 달 저 / 정영목 역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한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
이 책을 가벼운 소재덕에 책을 펼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덮었다.
그만큰 짜투리 시간에 읽기 쉬운 소설이었다.
위트가 가득하지만 마냥 웃기만 할 수 없는 묘한 꼬임이 이 책의 특징인 듯 하다.
그 뒤로 읽은 세계 챔피언은 조금 슬프기까지 햇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가 생각났다.
공중그네는 너무나도 재밌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터라 주변 친구에게도 권해 주었던 책이지만.
스토리진행의 짜임새는 매우 좋지만 이야기꺼리들이 그닥 밝지 않아 권하기가 어렵다.
공중그네의 선생은 독자들에게 밝음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 맛의 주인공들은 어두움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동화를 많이 쓴 작가답게 다분히 권선징악적이다.
불분명한 권선징악이지만 어쨌든 결론은 잔꾀를 쓰지마라이니...
스스로가 잘해보려 노력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닌 잔꾀를 부리다 된통 당한다는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순진한 시골사람을 사기치다 오히려 자신이 구렁에 빠져드는 목사의 기쁨.
숙부의 다이어리가 집에 도착하면서 액자구성으로 숙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손님.
이것만은 모르리라는 자만심에 빠져 내기를 걸었다가 오히려 당하는 맛.
남편을 속이려다 되려 남편에게 속이고 당하는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항해거리 맞추기로 내기를 걸고 봐달라는 그녀가 봐주지 않는 덕에 바다에 빠져버린 항해거리.
내기로 모든 것을 잃고 얻는 이야기 남쪽 남자.
고양이를 리스트의 환생으로 믿는 부인과의 이야기를 다룬 정복왕 에드워드.
급한성격의 와이프를 이해 못하는 남편이 향하는 하늘로 가는 길.
소년의 멋진 그림을 자신의 몸에 새긴 어느 문신가의 피부.
남편의 이야기에 큰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는 한 아내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자만심에 빠져 잔꾀를 부리는 이들에게는 결국 그 화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이야기들이다.
그 속을 가만히 살펴보면... 머랄까 작가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정복왕 에드워드를 제외하고는 남녀가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은 여자가 남자보다 현명함을 이야기한다.
이 책 후에 읽었던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와는 전혀 다른 여성관을 가지고 있어 비교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단순히 유쾌하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진중하지도 않았지만 세상사람들을 향해 멋진 비웃음의 한 방을 날려주는...
단편소설만이 줄 수 있는 극적전개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5.12.27 -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황경신의 프로방스 한뼘 여행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황경신의 프로방스 한뼘 여행

황경신 저 / 최병길 사진

황경신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월간지 페이퍼를 통해서였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글들이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고 다분히 여성적인 감성이 잔뜩 느껴지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함께 하는 즐거움보다 홀로 서는 이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글 하나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화자와 동일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느껴서 그런가보다.)

책 사이사이에 담겨진 그녀의 독백 그리고 travler's direction은 작가 특유의 감성과 친절함이 쏙쏙 담겨져 있어 작은 감동을 남겨준다.

프로방스지역을 처음 만난 것은 피터메일의 여행 에세이 나의 프로방스(원제:A Year in Provence)를 통해서였다.
그의 글 속에 보여진 프로방스는 한없이 정적이고 간간히 고양이나 개울음소리나 들릴 법한 고요함의 한가운데 있는 곳이다.
그 고요함 속에 작은 촛불의 빛이 전해주는 정겨움과 마을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 바로 프로방스였다.
그래서 이곳을 한 번 가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후에 서점에서 황경신의 프로방스여행기를 발견한 순간 망설임없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이다.

보름간의 여행이 보고자 하는것 말하고자 하는것 그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지만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속에서도 잠시 멈춤을 하여 그곳의 정서를 담아내고자 노력한 흔적들이 보인다.
단순히 그녀의 글로만이 아닌 그녀와 동행했던 방송국 PD가 담아낸 사진들 속에서도 짧은 기간에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조용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사진과 글이 함께 어우러져 그곳에서만 줄 수 있는 감성이 느껴지는 듯 했다.
동행자가 있어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따스한 시선이 담긴 사람들의 모습.
프랑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문화.
로드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한 베품.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끼는 화려함 속에 담긴 강박함이 이곳에서는 낯선 이방인에게 열쇠를 맡길 정도의 여유로움이 넘쳐난다.
이방인에게 답을 바라지 않는 친절함을 보이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찌보면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단편적인 사건이 아닌가 싶다.
(이 하나로 인해 전부가 그럴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그리고 한국에서 그런 사람이 없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언젠가 나 역시 이 책에서 담아낸 것들을 느껴보고 싶다.

p.67
어디로 갈까, 얼마나 머물까,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서 잘까...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소한 선택의 문제도 시작된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오늘과 비슷한 내일은 없다. 여행이 '반복되는 일상'을 환기시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p.83
부족한 것들은 우리 속에 있는 '완성에 대한 욕구'를 건드리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끝없는 변화를 거듭해가고 있는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완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쪽, 혹은 이미 완성된 세계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쪽, 어느 쪽이 나은 삶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p.149
인생이란 참 이상한 것이다. 아무리 '나쁜 일'도 지나고 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 모든 복잡한 세상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p.163
걸음을 멈추고 잠깐 뒤를 돌아본다.
숨가쁘게 달려오던 삶이 깜짝 놀란 얼굴을 하고
무슨 일이냐고 내게 묻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돌아선다.
내 앞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 놓여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모든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가끔 삶이 무료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6.01.10 -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서머싯 몸 저 / 송무 역


황경신의 한 뻠 프로방스 여행기를 읽고 난 뒤 나름대로 필을 받아 집어든 책이 바로 서머 싯 몸의 달과 6펜스이다.
이 두 책간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솔직히 의문이지만.
그냥. 그 느낌이 그랬다.
그게 다다.
그리고 이 책을 집은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었고 점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눈에 통증을 호소할 지경이었다.
한 인간에 대한 관찰이 그리고 한 인간의 방황이 너무나도 처절하게 묘사가 되어 있었고.
그만의 매력을 느끼기엔 그의 방황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그간 지내온 자신의 모든 삶을 부정하고 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용기와.
마치 세상과 단절하려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내심 부러우면서도 그 안에 깃든 홀로 싸우고 있는 그 만의 전쟁터가 처절하게 느껴졌기에 무서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든 것이 아닌가 싶다.

겉으로 보기엔 온유한 가정을 가지고 있는 찰스 스트릭랜드.
평범한 가정생활과 상류사회 특유의 모임을 통해 적당히 사람들과 교류도 하며 지내던 그가 아내에게 편지 한 장만 달랑 남기고 떠났다.
가정사에 아무런 문제 없이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남편이 남겨준 편지 한 장의 배신감에 몸을 치떨게 만들고.
사회적 이목이 두려워 그에게 느끼는 배신감 마저도 마음 속 깊숙이 담아 닫아두어야만 했다.
그가 영원히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연민의 시선을 담아내기 위해 그녀는 세상의 온갖 슬픔과 고통을 담아낸 한 여인의 모습으로 분함으로써 주변의 동정적인 시선과 함께 일자리를 얻어 생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내가 찰스를 찾아간 것은 그녀의 부탁을 시작으로 그와 두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꽤나 괴팍하지만 무언가가 나와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비슷한 코드로 편한 만남을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화가가 되기 위한 꿈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온 프랑스에서 그는 냄새나고 작디 작은 골방에서 그림만 그리며 생계를 근근히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화가가 자신의 전부이지 생계는 그냥 살아남기 위한 부속일 뿐이다.
돈이 생기면 미술도구를 사는데 소비할 뿐 음식은 먹을수도 굶을수도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구속감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안식처가 되주는 미술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추운 방에서 홀로 앓고 있는 그가 안쓰러워 자신을 무시하고 구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기꺼이 내놓는 스트로브.
그(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지독한 모욕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시대에 보면 멍청하리라는 판단이 들만큼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해서 순수하다고 할까? 그래서 그는 늘 타인들로부터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고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상물정을 알아버려 머리가 커버린 어른들이 그에게 내던지는 것들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는 재능은 없으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이다.
사회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순진할만큼 때묻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미술에 있어서는 적당히 현시대의 조류에 맞춰 살아가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시 스트릭랜드로 돌아가서...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내어준 스트로브의 아내와 동거를 시작한다.
여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던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의 아내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의 행적으로 보건데 자신에게 반해버린 그녀에게 모델을 요구하는 대신으로 자신의 몸을 그녀에게 준다는 일종의 묵시적인 계약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온갖 찌든 것들을 품고 사는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그네들에 대해 경멸과 멸시의 시선을 던지는 그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였을까?
모델과 성적관계라는 묵시적인 계약관계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어딘가에 묶여있길 싫어하는 그의 자유로운 사상에도 살짝 어긋남을 보여준다.
단순히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스트로브에게 최후로 던지는 모욕이었을까?

그녀와의 관계가 정리된 후 그는 처음으로 그림을 보여준다.
그 보여주는 행위는 나에게 이별을 알려주는 작은 메세지리라.

그 뒤로 그의 행적은 화자가 보고 느낀 것이 아닌 제 3자의 시선과 말을 통해서 전해 들은 것을 다시 담아낸 것이다.
온갖 험한 일을 행한 끝에 도달한 섬 타히티.
그곳은 그가 도달하고자 한 마지막 낙원이었으며 자신의 자유를 내뿜어 낼 수 있는 최대의 낙원이었다.
속고 속이고 가면을 쓰는 지금껏 보아온 온갖 가식과 허영을 뒤집어쓴 속물들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던 곳이고...
그곳이 자신의 마지막 정착지임을 깨닫고 온 몸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고갱을 모델로 하여 이 글을 썻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책 속에서 느껴진 그의 그림들은 붉디붉은 강렬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진실로 추구했던 삶을 쫓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삶들...
그런 그의 열정만큼이나 그는 무척이나 시니컬한 시선으로 세상사람들과 마주했다.
그 특유의 시니컬함이 없었다면 그는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던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과 현실은 책 제목처럼 달과 6펜스이다.
이상향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나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달이며...
지금 살고있는 이 현실은 불과 6펜스의 값어치밖에 안되는 곳이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이 현실에 대해 얼마나 조롱기가 가득한지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남자 그리고 세 명의 여자가 나온다.
첫번째는 스트릭랜드 부인.
그녀는 가끔 저녁만찬과 티 파티 등을 통해 적당히 상류사회와 어울리며.
남편의 배신에 온 몸을 떨 지언정 주변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아내기 위해 가녀린 약한 이혼녀의 모습으로 분하고.
후에 남편의 그림이 크게 인정받음에 과거의 남편이 자랑스럽고 자신은 아직도 그에게 작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듯 보인다.
그녀는 세상의 시선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은 없다.
머.. 그게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과 동일하게 보아도 상관은 없지만.
세상의 시선속에서 그녀 스스로 보호받고 보호하기 위한 온갖 위선으로 가득한 삶만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다.

두번째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
그녀의 삶은 자신의 남편 스트로브로 인해 제 2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삶은 온갖 가식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버렸던 만큼 그녀의 새로운 포장은 과거를 감추기 위함. 그리고 자기합리화를 위함이었기에 온갖 가식과 거짓만이 살아숨쉬는 삶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 가면을 벗고자 했을 땐 죽음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세번째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동행인 아타.
그녀는 자기희생을 통해 자기애를 보여주는 여자였다.(아마도 작가의 이상형이 아니었을까.)
기존의 그가 만났던 여자와는 달리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던 여자.
그래서 그는 마음 편하게 그녀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청했고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그에 대한 사랑의 마침표를 찍어냈다.

가식과 허영이 들뜨는 현실과 자신의 꿈과 열정이 숨쉬는 이상향.
이곳이 바로 6펜스 그리고 달이 가리키고 있는 곳이다.
6펜스.
가장 작은 화폐로 작가는 현실을 그만큼의 가치만으로도 충분타라고 하는 듯 작가는 스트릭랜드로 분하여 시종일관 트집잡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커다란 포용력을 가지고 간 타히티.
그곳은 스트릭랜드가 꿈꾸는 자신의 혼을 놓고 자유로운 열정을 만끽한 달과 같은 이상향이다.

두서없음에 서글프고 이렇게도 멋진 작품을 이런 식의 표현밖에 할 수 없어 글을 타이핑하면서 시종일관 우울하게 만들었던 달과 6펜스.
그가 가진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발로 한 대 뻥 차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지만....
이 모든 것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융화가 된다.
2005년의 마지막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소설은 마지막작품이 아닌 2005년 내가 만난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p.77
나는, 양심이란 인간공동체가 자기 보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규칙을 개인 안에서 지키는 마음속의 파수꾼이라고 본다.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p.206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없을 테니까.

p.254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하였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태어난 곳에서도 마냥 낯선 곳에 온 사람처럼 살고, 어린 시절부터 늘 다녔던 나무 우거진 샛길도,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바글대던 길거리도 한갓 지나가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가족드 사이에서도 평생을 이방인처럼 살고, 살아오면서 유일하게 보아온 주변 풍경에도 늘 서먹서먹한 기분을 느끼며 지낼지 모른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또는 격세유전으로 내려온 어떤 뿌리깊은 본능이 이 방랑자를 자꾸 충동질하여 그네의 조상이 역사의 저 희미한 여명기에 떠났던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것일까.

p.259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 심기 : 2006.01.24 -

내가 만난 두 사람의 클림트


클림트
(KLIMT)
크리스티나 아이헬 저 / 송소민 역
(the painted KISS)
엘리자베스 히키 저 / 송은주 역

영화 클림트를 보고 나오면서 너무나도 난해했던 문제를 풀기 위해 서점을 찾았고.
그 안에서 난 두 명의 클림트와 인사를 나누었다.
엘리자베스 히키의 클림트.
그리고 영화의 원작이라는 크리스티나 아이헬의 클림트.
새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람이 이렇게 달라보이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관찰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같은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어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달리하다는...
원작이었던 크리스티나 아이헬의 클림트는 영화만큼이나 난해했지만.
영화속에서 축약된 그 느낌들이 활자화되어 풀어지니 아~ 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크리스티나 아이헬의 클림트.
그녀가 만난 클림트는 어느 누구의 대변자의 입장으로서 관찰하는 클림트가 아닌 그 자신이 클림트였다.
화가가 유명세의 절정에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었던 그 시절을 중심으로 그는 말하고 있다.
어느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는 클림트.
그의 방황 속에서 내가 나인 것도 모르고. 그가 나인 것도 모르는...
자기만의 아이러니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
안주할 수 없었기에.
나를 찾을 수가 없었기에.
방황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붓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나를 알린다.
나를 알리는 그 작업으로 나를 찾고.
그 작업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그의 방황은 무엇으로 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단지 그의 힘겨운 방황만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더 안타깝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찾을 수 없고 알릴 수도 없게 만들 붓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그의 생은 어떠했을까?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그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꿈 속을 거닐 듯 헤매이는 그를 만나 조금은 그의 그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었던. 그 무언가가 있던 크리스티나 아이헬의 클림트.
우리나라에서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이라는 부제만큼 이 책에서 만나는 클림트를 잘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히키의 클림트.
아이헬의 클림트와는 전혀 다른 클림트이다.
그의 전반적인 삶을 만남으로써 아이헬의 클림트에서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만들어 준 히키의 클림트.
클림트의 영혼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었던 에밀리 플뢰게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잡기를 원했지만 잡을 수 없었던 클림트.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클림트는 새장에 가두어 놓고 볼 새가 아닌 머나먼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봐주어야 할 새였다.
그래서 그녀는 더할나위 없이 공허함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기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클림트로 인해 평생을 묶여 살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자가 본인이 아닌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 보니 아이헬에서 만난 클림트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하나에 안주하지 못한 그의 모습은 동일하나(이거야 사실이니 동일할 수 밖에 없지만) 그가 가진 공허함의 깊이는 남달렀던 것이다.
아니 깊이의 정도를 떠나서 그 구멍이 다르다고 해야할까나.
아무리 돌고 돌아도 찾아오는 곳.
갖은 상처로 가지고 돌아와 치유를 받는 그곳은 단 하나 에밀리 플뢰게였다.

두명의 클림트를 보면서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본인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이다.
본인의 능력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에 그는 혼돈에 빠졌던 것이고.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했던 것이고.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에 사랑을 가져다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말로 치자면 추잡한 추문거리를 가져다 주는 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도 있지만.
그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바로 이 두 사람의 클림트이다.

보여줄 수 없었던 내면의 고통.
그것을 평생 끌어안고 살아가야 했던 클림트.

둘 중 어느 것이 좋으냐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대답하기 힘들다.
처음 두 권의 책을 막 놓았던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어느 것이 좋다고 단정지을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 생각되어 진다.
한 번쯤은 두 사람의 클림트를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6.09.03 -


소설 속 오래된 정원


오래된 정원
황석영 저

올해(2007.01.10) 첫 책읽기로 집은 오래된 정원.
가슴 속 깊은 곳에 멍울을 심어놓은 느낌.
질퍽질퍽한 진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려 부스스 깨어져버리는 듯한...
이 소설에 대한 짧은 느낌이다.
상권을 읽으면서 빠져버린 진창속을 하권에서는 그 진창이 메말라 굳어버린 느낌이 들더라.
영화처럼 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이 만나 사랑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들어낸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어우러짐 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인 듯도 싶다.
섬세하게 표현된 글자 하나하나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게 만들어버리고.
작가의 경험치 속에서 나온 글들은 먹먹한 가슴을 두드리게 만들어버렸다.
오래전 광주 민주화운동이 처음 대중매체를 통해 밝혀지던 날.
내가 살던 그 시절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버려 한동안 쏙쏙 빠져나온 방송들을 빠짐없이 보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난 이야기는 화면을 가득채웠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군부정권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만들어졌던 젊은 혈기들.
그들의 방황하는 그리고 고뇌하는 모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싶으랴마는 그래도 그네들의 뜨겁게 달궈진 열정들은 덩달아 나까지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어느 곳에 정착치 못하고 헤매이는 영혼 오현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영혼의 울부짖음이라고 해야할까.
그는 밖으로의 표출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을 흡수하고 또 흡수해서 가슴속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의 가슴속 울부짖음은 만기 후 나와 누님에게서 한윤희의 소식을 들으면서 멍하니 있다 아무말 없이 흘러내린 눈물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크게 울부짖을 수도 없었고 큰 소리를 내지를 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조용히 눈물만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그네의 안타까움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그가 도피중 만난 한윤희.
그와는 달리 차가운 열정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시종일관 차갑고 쿨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어쩌면 오현우라는 인물을 만나 그리 변해버리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지긴 했지만 단순히 그 하나만으로 변했다고 하기엔 그녀가 톡톡 내뱉었던 말투나 나름 거침없이 행동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원래 모습이 아닌가한다.
단순히 잠수를 타는 그에게 작은 안식처를 주었을 뿐인 그녀가 그의 영혼의 작은 안식처까지 되어버렸고 그가 떠나버린 그곳에서 또 다른 그를 품에 안고 살아간다.
그 이후에 두번째로 만난 남자 송영태.
그녀는 그를 통해 오현우가 가졌던 그 고뇌와 방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오현우에게 하지 못했던 울부짖음을 할 수 있었고 그를 조금이나마 도와주면서 오현우에게 해주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를 해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보상받으려 했던 것 같다.
머나먼 타지에서 만난 세번째 남자 이희수.
그는 그들(오현우나 송영태나)이 가보지 못했던 이상향에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편하고 안락함을 느끼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젊은 고뇌를 탈피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까. 여튼 그렇다보니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녀에게 작은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송영태에게는 주지 못했던 작은 구석자리를 그에게 주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온 그녀.
아무리 돌고 돌아도 그녀는 그의 품속일 수 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열정을 가슴속에 품고 살고 있다 해도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차갑든 뜨겁든 그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이라 그녀는 그의 품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노선을 타고 있는 송영태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이해했고.이상향의 세계속에서 살고있다 생각한 이희수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그 이상향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그 무언가를 이해한것 같다.

올해 처음 선택한 책으로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말을 주저없이 할 수 있고 내 나름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소설이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담을 수 없었던 상권의 마지막에 교도소에서 본 비둘기며 고양이며 그네들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경험치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이상 절대 담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이 작은 곳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
솔직히 너무나도 딸린 내 글발로 이 소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족함이 절절 넘치긴 하지만 꼭 하고 싶었다. 너무나도 멋진 글을 만났기에 그들을 만났노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네들을 만나지 못했던 이들에게 꼭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은 오래된 정원.
절대 후회는 없을 거라 자부한다.

상 : 78 페이지. 
처음 여기 오던 밤에 나는 뺑끼통 위에 올라서서 먼 어둠속 허공에 몇점씩 빛나는 별을 보았소, 별인 줄 알았다가 산동네 가난한 창에서 보내는 불빛임을 이튿날에사 알아보았소. 초저녁에는 산허리에 불빛이 가득하더니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까울수록 한점 두점 사라져 저만큼 하나, 다시 저어만큼 하나씩. 그제사 창이 다시 별이 되는 연유를 새겨봅니다. 잠들지 못한 마음 별이 되는 지금, 내 것도 저기서는 별이 되겠지요.

상 : 142 페이지. 
알이 깨어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잖니. 고치 속에서 번데기는 다시 오랜 동안 긴 잠을 잔다. 그런데 고치를 부수고 나와 껍질을 벗고 고운 날개를 가진 나비로 변해서 푸르른 창공을 날아갈 즈음에는 이 나비는 그전의 벌레가 아닌 것처럼, 어머니가 된 여자는 그전의 여자가 아니야.

상 : 297 페이지.
보살은 자기가 보살행을 한다는 생각조차 잊어먹는 존재래. 악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대방을 닮아서 욕망의 뿌리를 다 잘라버릴 수는 없을 거야. 그게 세상살이의 한계란다. 그래두 그걸 무릅쓰는 젊은이는 아름답지 않니?

하 : 190 페이지.
사랑은..... 전체의 절반은 밥 같은 몸이고, 절반의 절반은 끊임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 같은 일상이고, 절반 중에 그 나머지 절반은 주변의 이웃이 완성시켜준단다.

하 : 232 페이지.
잠잘 때를 생각해봐. 온 밤내 같은 줄거리의 꿈을 꾸게 되지는 않아. 깨고 나면 몇 장면만 또렷하게 남곤 하지. 아무도 그 흐름을 미리 예상할 수는 없어요. 생이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것들이 서로 끼여들지 않고는 어떤 대목이 중요했는가를 모르고 죽게 될 거야.

하 : 274 페이지.
인간의 삶은 한편의 시와도 같아 그것은 시작이 있는가 하면 종말이 있다. 단지 전체가 아닐 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자들 앞에서 두려워하랴? 아, 죽은 자들이여 그녀를 쉬게 하라.


- 이전블로그에서 옮겨심기 : 2007.01.10 -



On the road :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On the road :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저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시간적 여유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또 다른 자아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장기여행자들로 무엇보다도 또 다른 나를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 그네들을 읽는 내내 부러움을 시선을 가득 담고 마주하게 만든 책 온 더 로드.
지금껏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과감히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그 용단을 내린 그네들이 왜이리도 부러운지...
나는 무엇에 그리도 주저하고 있는건지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배낭여행객들의 자유로움이 가득 숨쉰다는 거리 카오산 로드.
가보지는 않아서 그곳이 얼마나 열정으로 가득 찼는지.. 그리고 자유로움의 공기가 살아숨쉰다는지 잘은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만난 모든 인터뷰어들은 자유로움과 열정으로 가득가득 차올라 이 책 속에서도 살아숨쉬고 있었다.
그러니 부러움의 시선을 가지고 바라볼 수 밖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버리고 방문한 나라의 문화를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써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다들 각긱의 매력을 가진 여행객들이기에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 인물은 바로 자메이카 출신의 트레이시아 버튼이다. 한마디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람들과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왜 이리도 매력적인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직접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 역시 그네들처럼 또 다른 세상속에서 그 세상과 오래도록 마주하고 싶다.

p. 262
살면서 의도적으로 찾아야 할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필요한 건 자연스럽게 다가오거든. 

p. 263
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 전하고 싶어. 내가 나인 게 미안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 여행을 하면서 사회가 날 어떻게 볼까 고민하는 대신 좀 더 나를 인정하게 됐다고 할까...

p. 268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나와 다른 건 당연한 거잖아. 나와 다르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사람들을 나와 구별하려고 하면, 정작 힘들어지는 건 자기 자신이거든. 나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 그냥 안아주는 거야.

p. 316
여행을 한다고 일상을 버리는 건 아니다. ... ...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버리는 건 일상이 아니라 욕심일지도 모른다.

- 이전 블로그에서 옮겨 심기 : 2007.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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